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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에 대해 말하기

표절, 기술자의 영역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 이인직의 <혈의누 (피눈물)>는 일본소설을 베꼈다는, 표절을 의심 받는 작품이다.

사실 이 이야기책-현대적 의미의 소설은 아닌 듯 하다-은 대한민국의 소설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의 소설이다.

단지, 한글로 씌여졌을 뿐이다.


1980년대까지 표절은 아무런 꺼리김이 없는 문화적 현상이었다.

공중파에서 방송되던 만화영화는 대부분이 일본산이었고, 그 주제곡도 그대로 차용이 되었지만 만든 사람은 언제나 '나상만'이라는 분이었다.

한국의 표절문화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나라는 일본이었다.

문화적 교류가 공식적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음악, 문학, 만화 등 문화예술 전반에서의 표절이 횡행했다.

TV 예능프로그램은 대부분이 일본 프로그램의 복사본이었다.

단지,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한국 TV에서 등장할 뿐이었다.



표절은 참 쉽다.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표절은 언제나 '창작'이라는 작업이 필요한 분야에서 발생한다.

없는 걸 만들든 있는 걸 바꾸든 '창작'은 머리를 써야한다.

지적 능력, 감성적 능력, 직관적 능력 등이 요구된다.

표절은 이러한 내면적 작업을 건너뛴다. 기술과 기능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표절은 기술자의 영역이다.


  


유명한 표절 사건이 있다.

한때 국회의원이었던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의 표절사건이다.

전여옥씨는 표절이 아니라고 우겼다. 결국 법정에서 표절이 확정되었다.

국회의원들의 표절이야 일상다반사라지만 대부분은 학위논문의 표절이다.

학위논문은 아무도 안보는 책이다. (그렇다고 '개새끼'가 아닌 건 아니다.)

전여옥씨는 대중출판을 했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여옥씨는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은 원래 그런 인종이다라는 사람들의 인식 덕분에 '표절 아줌마'라는 닉네임만 가지게 됐을 뿐이다.



표절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나는 예술가다', '나는 학자다'라고 우긴다는 것이고, 마지막까지 표절을 합리화한다는 점이다.


 


근래, 소설가 신경숙씨가 표절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엄마를 부탁해>라는 베스트셀러를 출판한 후 SBS <힐링캠프>에 나와서 "작가가 됐는데 글 쓰는 게 어려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표절을 했다.

표절 의혹이 일자 문학 권력들이 '신경숙은 표절 안했어요'라고 들고 일어났다.

그러다 문학 소비자들이 '병신아, 표절 맞잖아'라고 하니 찌그러(?) 들었다.


그랬더니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한 남편이 기어(?)나왔다.

"표절은 문학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소리쳤다.

표절을 부인할 수 없으니 표절을 정당화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다 남의 것 따라하면서 문학을 시작한다'는 것인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이다.

"표절은 문학 학습의 시작"이 정확한 표현이다.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시작하는 아이를 따라 쓰거나 베껴 그린다 혼내지 않는다.



문제는 출판(퍼블리싱, publishing)에 있다.



신경숙씨는 책을 낼 때 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서 냈다.

출판에는 "이것은 내가 만든 것이오."라는 웅변이 숨어있다.

'지'가 만든 게 아니다. 남이 만든 걸 옮겨 쓴 것이다. 그리고, 남이 만들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글을 도둑질한 것이다.


남진우씨의 논리대로라면, '살인은 생명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해야 한다.

신경숙씨도 나쁘지만 그 남편인 남진우씨도 못지 않게 나쁘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명지대학교 학생들은 귀한 돈을 내고 남진우씨에게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이다.




'천재소년'이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송유근씨가 18세에 박사논문을 냈지만 결국 표절로 밝혀졌다.

정황상으로는 지도교수가 자신이 발표했던 논문을 변형시켜 송유근씨의 논문을 대신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최연소 박사 만들기'와 '최연소 박사의 지도교수 되기'를 시도한 것이다.


신경숙씨가 소설가가 아니듯이 이제 송유근씨도 학자가 될 수 없다.

단지 기술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