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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책

[커피책] (4) 아메리카노 Americano는 미국식 커피이다


한국인들이 마시는 커피는 이탈리아식의 커피가 아니다. 이 정의는 이탈리아인들과는 달리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커피원두 자체가 이탈리아에서 보편적으로 마시는 원두와 다르다는 것이다.


음료의 재료가 되는 커피 종자는 아라비카 arabica와 로부스타 robusta, 2 종이 있다. 단지, 생산지 등에 따라 'XX커피', 'YY커피'라고 이름 붙일 뿐이다. 커피에 붙은 이름들은 나라 이름이거나 동네 이름, 수출항 이름, 농장 이름들이다.

커피 열매에서 껍질과 과육을 벗겨내서 말리면 '생두 green bean'가 된다. 그리고, 볶은 생두를 '원두 roasted bean'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원두와 한국의 원두는 그 볶기(로스팅, 배전)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원두는 말 그대로 '다글다글' 볶은 원두이다. 스타벅스가 커피 원두를 강하게 볶아내고 한국이 그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의 커피도 강배전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커피음료의 종류에 따라 '쓴' 정도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강하게 볶으면 쓴 맛이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보리차도 많이 볶은 보리를 사용하면 쓴 맛이 나는 것과 같다. 쓴 원두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고 상상해 보라. 그건 '사약'에 준하는 독한 맛일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원두는 부드럽다. 독하게 마시기 때문에 역으로 순한 커피원두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 커피는 물 또는 우유를 탄 커피이다. 커피 맛과 향이 강해야만 (특히) 우유를 이길 수 있다. 커피 생두를 바짝 태울 수밖에 없다. 미국사람과 한국사람들은 연한 커피를 주로 마시기 때문에 독한 원두를 사용해야 한다.



가까운 커피집에 가보시라. 커피콩이 투명한 믹서기 비슷한 기계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 믹서기를 그라인더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커피집에는 1 대씩 밖에 없다. 공간 절약을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5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나가는 고가의 설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 커피집의 주인이라면 1대의 그라인더 안에 카페라떼에 맞는 원두를 넣겠는가, 아니면 에스프레소에 맞는 원두가 넣겠는가?

당연히 카페라떼용 강배전 원두일 것이다. 아무도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라떼 보다는 아메리카노를 찾는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순한 커피를 사용하는 커피집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대부분의 체인형 커피집에서는 독한 커피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브랜드를 수입해온 경우에는 100% 그러하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는 조심해서 주문해야 한다.


가끔 카페라떼가 우유향이 강해 비린 맛이 나는 커피집이 있다. 카페라떼를 자주 마셔본 사람이라면 처음 가본 커피집에서 한 번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바로 그 비린 카페라떼를 파는 커피집에서는 에스프레소에 도전해 볼 만 하다.

또한,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 쓴 맛 외에 단맛이나 신맛, 과일향이나 부드러운 초콜릿향 등이 섞여 있다면 역시 에스프레소를 도전해 보길 권하다.

최초의 에스프레소 도전자라면 각설탕 2개 혹은 설탕 3 스푼을 넣고 도전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순한 원두라도 쓴 맛이 엄청 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달콤함이 없다면 2차 도전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막걸리 숙취로 고생해본 사람은 막걸리를 마시지 않는 것과 같다.

다 녹지 않을 정도로 설탕이 듬뿍 든 에스프레소는, 첫 쓴 맛에 정신이 번쩍 들고 작은 잔의 바닥에 깔리 설탕의 달콤함에 말 그대로 ‘녹아 내린다’. 잔을 비우고도 한 동안은 커피의 향이 입안에 맴돌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만약 당신이 흡연자라면 에스프레소를 더더욱 권하는 바이다. '에스프레소와 담배'는 '소주와 담배', '당구장과 담배'보다 궁합이 잘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