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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책

[커피책] (3) 에스프레소를 어떻게 마시냐?


커피의 숨겨진 향을 끌어내는 크레마 crema는 에스프레소에서만 추출된다.

그냥 물도 높은 곳에서 따르면 거품이 생긴다. 커피처럼 유기물이 함유된 액체의 경우 거품이 훨씬 많이 발생한다. 커피에서 거품만 떠 있으면 '야, 크레마 죽이네'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그냥 거품이다.

이탈리아어인 크레마는 영어로도 우리말(외래어)로도 크림 cream이다. 액체-특히, 기름-가 잔 기포로 뭉쳐진 상태일 때 크레마라고 하는데, 커피의 크레마는 커피 원두에 함유된 기름이 고온과 고압을 받아 추출되면서 형성된다. 즉, 우려내거나 끓이는 등의 커피 추출 방식으로는 크레마를 추출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그냥 거품이다.



고온, 고압의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는 그 추출방식이 까다롭다.

우선, 물을 끓여야 한다. 압력을 가할 펌프도 있어야 하고, 압력을 버틸 튼튼한 몸체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조건들을 1대의 기계에 잘 조합해야 한다. 지금이야 전기의 보급으로 이러한 조건을 비교적 수월하게 만족시킬 수가 있었지만 전기가 없던 과거에는 에스프레소 추출은 예삿일이 아니었으리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초기의 에스프레소는 발상지인 이탈리아에서도 사치로 취급되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커피란 에스프레소를 의미한다. 에스프레소 espresso를 영어로 옮기면 익스프레스 express가 되고, 다시 우리말로 옮기면 '고속'이 된다. 빨리 뽑아서 급하게 마시는 커피인 것이다. '원샷'으로 한 번에 마시는 커피이다.

이탈리아에서 커피집을 부르는 이름은 카페가 아니라 바 bar이다. 우리나라의 커피집처럼 테이블에 눌러 앉아 한담을 나누거나 책이나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는 곳이 아니다.

1유로를 꺼내며 "커피 한 잔 주시오." 30초 후, "커피 나왔습니다." 에스프레소 잔에 각설탕 하나를 집어 넣고 '원샷!' "수고하시오." – 이 모든 과정이 1분이면 충분하다.

물론,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하는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업무를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탈리아의 일반적인 커피 소비 형태는 말 그대로 '특급'이다.

커피값에 자리세가 포함될 필요가 없다.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집들의 커피값이 저렴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게다가 커피 소비가 워낙 많기 때문에 '1유로'만 받고도 장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커피 한잔의 원가는 300원 내외이다. 가겟세나 인건비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1유로만 받아도 1천원은 남는다. 100잔을 팔면 10만원, 500잔을 팔면 50만원이 남는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에스프레소가 한국에서는 왜 인기가 없을까?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는 현재도 단연코 '믹스커피'라고 불리는 조제형 스틱 커피이다. 믹스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과 프림이 배합된 1잔 단위 포장 커피이다. 믹스커피의 가장 큰 특징은 '달고 구수하고 배부르다'이다.

아침을 거르고 등교하거나 출근했을 때, 간단한 요기거리로 손색이 없다. 카페인이 각성 효과를 주고, 당분이 힘을 주고, 프림이 배를 불려준다. (커피도 포만감을 준다. '모닝 커피 morning coffee'라는 단어는 낭만적인 단어가 아니다. 아침밥값을 아끼려고 커피 농장의 노예들에게 주던 커피이다.)

믹스 커피는 가장 저렴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착한 커피이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들을 죽였듯이 스타벅스는 다방을 죽였다. 믹스커피와 같은 맛의 커피, '2대2대2' 커피를 내던 다방이 사라진 것이다. 집과 사무실에서는 믹스커피, 밖에서는 스타벅스류의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다.

커피집의 초창기 주 매출은 '카페라떼'였다. 에스프레소와 우유, 설탕 시럽을 섞으면 믹스커피와 가장 유사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사실은, 믹스커피가 시럽 넣은 카페라떼 맛을 따라한 것이다.) 그러다가 점점 커피 본연의 맛을 찾게 되면서 우유를 뺀 커피, 시럽을 뺀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바로 '아메리카노'이다. 아메리카노가 커피 판매 비율을 80%에서 90%를 차지하고 있다.

아메리카노는 물의 비율이 70% 이상 차지하는 커피이다. 즉, 에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보다 3배 이상 쓴 커피가 된다. 아직 한국인들은 그렇게 쓴 커피를 감당하지 못한다.




또한 커피 문화의 차이가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로 주문 패턴을 나누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나눠먹기'라는 문화가 있다. 너도 한잔, 나도 한잔 – 마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대화가 목적이 된다. 코카콜라가 한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예상보다 잘 판매가 되지 않았다. 원인은 간단했다. 미국식 콜라병의 크기는 혼자서 마시기 좋은 작은 크기 - 한 잔 크기 - 였다. 코카콜라는 한국인을 위한 크기의 병을 만들었다. 2잔에서 3잔 정도가 나오는 콜라는 가족들끼리나 손님과 나눠 마실 수 있는 크기로 한국의 가정을 파고 들었다.

'다방', '찻집'도 나눠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공간이다. 이러한 전통은 커피집에도 이어져서 아메리카노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몇 시간씩 '이야기 꽃'-나는 이 표현이 식상해서 좋다-을 피운다.

수다를 떨기에 '특급'으로 빠른 커피는 너무 양이 적다. '빨리 빨리'의 대한민국 보편문화도 커피집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커피집이 이탈리아에서처럼 '바 bar'라고 불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공간의 문화적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방



하지만, 에스프레소의 선호는 미세하게나마 점점 늘어나고 있다. 커피 '섭취'만을 목적으로 하는 커피 매니아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라는 특성을 공유한 한국 사람들에게 에스프레소는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커피가 될 수도 있다. 후다닥 뽑아서 '쪼~옥' 마시고 "안녕히 계시오'하면 되는 유일한 종류의 커피가 에스프레소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에스프레소에 다 녹지 않을 만큼의 설탕을 넣고 한 잔 마시면,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쌉쌀한 맛에 이어 침이 흐르도록 달콤한 뒷맛의 조화는 '삭힌 홍어', '멍게' 등과 비슷한 중독성을 가진다.



하지만 커피집의 에스프레소는 권하지 않는다. 특히,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집에서의 에스프레소는 아무리 미워하는 사람도 먹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