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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책

[커피책] (2) 아메리카노는 미국 커피가 아니다



더치 커피 dutch coffee는 네덜란드 커피가 아니다. 일본 커피이다.

물을 흘려 커피를 내리는 방식을 브루 brew 라고 한다.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커피메이커가 이러한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낸다. 커피메이커가 더운물로 커피를 만드는 반면 더치 커피는 차가운 물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다. 콜드 브루 커피 cold brew coffee인 것이다. 천주교의 성자인 발렌타인에 초콜릿을 결합시킨 일본인의 상술은 콜드 브루 커피에 네덜란드를 결합시켰다. 그 유래까지도 그럴싸하게 지어냈다.

대항해 시대의 네덜란드의 선원들이 오랜 항해 중에 커피를 마실 수 없어서 커피에 찬물을 내려서 커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도 있던 커피 추출방식에 이름만 네덜란드(dutch)를 붙인 것뿐이다.



학창시절 우연히 만난 핀란드 사람에게 자이리톨 껌을 씹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안씹는다고, 껌 얘기 좀 그만하라고.'였다. 부산 출신이라 처음 만나는 서울여자들의 '아침마다 바다를 볼 수 있어 좋겠어요?'라는 말도 안되는 질문을 자주 들었건만, 핀란드 친구에게 같은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넌 매일 한강에서 산책하고 주말마다 남산 가냐?'였다.)

혹시 네덜란드 사람들을 만나도 '더치 커피' 얘기는 꺼내지 말자.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커피집 가서 사 먹는다.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는 브루 커피 brew coffee이다. 실용적인 미국인들에게 커피는 귀찮아서는 안되는 음료이다. 그래서 커피 가루 넣고 더운물 부어서 커피색과 맛이 나는 음료를 만들어낸다. 헐리우드 영화의 경찰서 장면에서 도너츠와 세트로 등장하는 커피가 바로 브루 커피이며 이것이 미국의 커피이다. 설탕 듬뿍 도너츠와 쌉쌀한 커피는 최고의 조합이 된다. '던킨 도너츠'의 그 유명한 광고 카피, '던킨 앤드 도너츠'도 이렇게 나온 것이다. 덕분에 던킨은 도너츠의 매출 상승뿐만 아니라 커피라는 신규 매출까지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메리카노는 무엇일까?

많은 양의 물에 에스프레소를 첨가한 커피가 아메리카노이다. 블랙 커피, 브루 커피를 아메리카노와 혼돈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메리카노에는 반드시 에스프레소가 있어야 한다. 에스프레소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메리카노가 아니다.

 

2차 세계 대전, 노르망디에서부터 유럽대륙에 상륙한 미군들은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진출했다.

미군 중에는 이탈리아의 이민 2세인 알프레도 마르시아노가 있었고 그 역시 미군이 이탈리아로 진입할 때 아버지의 고국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알프레도는 전우들을 이끌고 로마시내를 활보하고 다니게 되었는데, 지난 밤 과음을 해소하기 위해 커피 바 bar를 찾았다.

알프레도는 원주민의 언어로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 주시오.

종업원은 설탕과 함께 아주 작은 잔에 아주 진한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알프레도와 동료들은 커피를 입에 대자마자 기겁을 하며 물을 찾았다. 그들이 마신 커피는 '에스프레소'였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커피'라는 단어는 '에스프레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혈통은 이탈리안이었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알프레도에게 에스프레소는 독약과 같은 것이었다.

'커피 맛이 이게 뭐냐?'

바리스타는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집 커피가 진하게 잘 뽑아내기로는 근동에서 최고다.'

'진하게 잘 뽑다니 말이 되는가? 커피가 이렇게 쓰면 어떻게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럼, 커피에 물이라도 섞으라는 말이냐? 너 아메리카노(미국인)인가?"

이렇게 해서 '아메리카노'라는 커피가 탄생하였다.

 


나의 창작에 의하면 아메리카노의 유래는 이러하다. 시대 배경과 등장인물이 다를 뿐 미국인에게 이탈리아의 커피, 즉 에스프레소는 너무 쓴 커피였다. 이탈리아인들이 보기에 물에 희석한 묽은 커피는 미국인들만 마시는 커피였다. 이탈리아어로 '카페'라고 하는 '커피'라는 단어조차 아까워서 '카페 라떼', '카페 모카' 등의 이름과는 달리 '아메리카노'라고만 이름 짓게 된 것이다.

아메리카노 americano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이다. 영어로 바꾸자면 아메리칸 american이 된다. 이탈리아인들에게는 미국인만 마시는 커피이면서 동시에 우리 이탈리아노는 마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이름이다.

 

아메리카노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마시지 않는 미국인들만을 위한 이탈리아 커피이다.

 

여기서 용어를 좀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커피'는 커피나무의 열매와 그 열매를 볶은 것, 볶은 열매를 갈아낸 가루, 물로 가루를 짜내거나 우려낸 것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전 세계적으로 커피 열매를 볶아낸 커피 원두나 커피 가루로 어떤 방식으로든 우려내거나 짜낸 음료를 커피라는 단어에 포함시킨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커피가 음료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에스프레소만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그냥 까만 물이면 모두 커피이다.

 


한국에서는 그 양상이 좀 복잡하다. 커피집에서 커피를 칭하는 단어들이 모조리 이탈리아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였다.

다방이 외출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시절, 병에 들어있든 작은 비닐 포장 스틱에 들어있든 모든 커피는 인스턴트커피였고, 커피의 종류는 설탕의 유무와 프림의 유무에 따라 나뉠 뿐이었다.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를 끓여서 그 액을 말려서 물에 잘 녹게 만든 가루를 말한다. , 커피콩을 볶아서 우려내거나 짜낸 커피가 아닌 것이다. 맛을 내기 위해 향신료도 좀 넣고 해서 만든다.

1999, 세기말에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에스프레소의 시대가 열린다. 슈렉과 피부색 유전자가 같은 녹색 사이렌 siren이 박힌 종이컵은 '뽀다구'의 상징이었고, 스타벅스 매장은 3개월이면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붐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커피라는 단어의 의미에 아메리카노나 카페 라떼 같은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한 커피가 포함된다. 특이한 점은, 아직 '에스프레소' '커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커피는 시차를 두고 미국의 커피문화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커피가 한국에 전례된 시점은 6.25전쟁에 미군이 참전하면서부터이다. (고종황제가 가베라 불리던 커피를 마셨다는 것은 접어두자. 이 책은 소수의 얼리 어답터나 오타쿠를 위한 책이 아니다.) 미군의 비상식량에는 비스킷과 네슬레의 인스턴트 커피 가루가 빠지지 않고 들어있었다. 자연스레 미군의 문화는 시민들 사이에 퍼졌고, 나물에 밥 비벼 먹고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생기게 되었다.

인스턴트 커피문화는 50cc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다방레지를 통해 퇴폐문화와 연결되기도 했고, 믹스커피라 불리는 커피 스틱으로 언제 어디서 즐길 수 있는 보편문화의 지위를 획득하기도 했다. 뜨거운 물을 만들기 힘들 땐 구멍가게에서 깡통커피를 마시면 되었다.

 


혁명은 1999년 이었다. IMF로 힘든 시기는 '난 소중하니까'라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강화시키기도 했는데, 누구나 다 먹는 점심 백반보다는 나만 마실 수 있는 커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20, 특히, 여자 대학생들에게서 스타벅스가 대유행하였다.

스타벅스는 미국커피이다. 정확히는 미국화된 이탈리아 커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보편적인 커피는 브루 brew커피이다. 볶은 원두가루에 더운 물을 흘러내려 우려낸 연한 커피이다. 미국 대중에게도 '에스프레소'는 커피가 아니다.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집들의 주 메뉴는 물 탄 에스프레소와 우유 탄 에스프레소이다. 에스프레소의 향과 맛은 살리면서 미국인들의 민감한 혀에도 맞춘 것이다.

1999년 이후의 한국의 커피는, 집과 사무실에서는 인스턴트 커피, 밖에서는 스타벅스류의 커피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점차 집과 사무실에서도 에스프레소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메리카노는 까맣지만, 까맣다고 모두가 아메리카노는 아니다. 맥주에 물과 홉만 들어가야 하듯이 아메리카노에는 물과 에스프레소만 들어가야 한다.

따뜻한 우유에 인스턴트 커피를 풀어서 '카페라떼'를 마신다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아메리카노와 마찬가지로 우유를 넣는다고 모두가 카페라떼는 아니다. (참고로 라떼 latte는 이탈리아어로 '우유'이다.) 커피 이름에 '카페'라는 이탈리아어가 들어있으면,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한 커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