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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

비 오는 날, 천상병


비 오는 날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오십 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 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 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을

나는 어이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감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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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가 출근을 하는 길은 어제와 달리 어두웠습니다.

두어방울씩 비가 떨어졌습니다.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가 죽어가는 날에도 아이들은 엄마손을 잡고 우산을 펴고 있습니다.

고향, 하늘로 돌아간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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