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들

별 헤는 밤, 윤동주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쟘」 「라이너․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어리지도 어른스럽지도 않은 나이에 군대에 갔습니다.

시린 겨울 강원도 38선 이북의 훈련소는 몹시도 추웠고 몸서리치게 맑았습니다.

달이 차마 뜨지 못한 밤, 

모든 잎들이 떨어져 스산하다 못해 무서워 보이는 검은 가지들 사이로 별들이 있었고,

고개를 들면 별들이 너무 많아서 하늘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땅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많은 별들이었습니다.



아래의 광고를 클릭하시면 블로그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시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 이육사  (0) 2017.07.24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0) 2017.07.19
향수(鄕愁), 정지용  (0) 2017.07.17
플라타나스, 김현승  (0) 2017.07.14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0) 2017.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