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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

쉽게 씌어진 시(詩),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詩)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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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과 무능력으로 무너지는 나날에...

스스로의 위안을 위한 무언가를,

누구나가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록, 무력함으로 종국에는 무너진다 해도,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해줄 나를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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