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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

집으로 간다.
겨울, 비, 밤, 취기.
이 정도면 집으로 가야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거기에 더하여, 나는,
사람을 잃고 직장을 잃고
아이의 학원비와 아내의 소박한 인터넷쇼핑을 할 벌이를 잃었다.

집으로 간다.
가장 미안한, 아내에게 간다.
딸아이는 자고 있으니 잠시 덜 미안하자.

사랑하면 그걸로 다 된다는 거짓말은 아내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사랑에도 돈이 필요하다.
그런 시절이다.

그래서 돈도 없이 사랑하는 나는
아내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다.

맘 놓고 술을 마시지 못한 밤, 비, 겨울.
사랑을 시작하긴 참 쉬웠는데
사랑을 한다는 건 참 어렵다.

나는 집으로 가고 싶어서, 나는 집으로 간다.

주저리 시를 쓰는 동안에도 집으로 가고 있는 버스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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