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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

[손바닥 소설] 전설의 횟집

전설의 횟집

 

 

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횟집이 있다. 가격이나 맛, 인테리어가 탁월해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속도 때문에 유명한 가게이다. “광어 하나요”라고 주문을 하면 반찬들이 나오자마자 광어회 한 접시가 나온다.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지만 정상적으로 주문을 받고 수족관에서 광어를 꺼내 손질하고 다듬어서 회 한 접시를 만들어서 냈다.
주방장인 사장의 칼솜씨 때문이었다. 살집이 있는 몸이라 그다지 민첩해 보이지 않는 체구지만 횟감을 도마에 올리는 순간 칼날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칼질을 한다. 엄청난 속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두께로 회를 썰어낸다. 재료마다 다른 칼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나의 칼만 사용하는데, 언젠가 이유를 물어봤을 때 “칼이 뭐 칼이지”라고 대답했었다.
가게 안쪽에 있는 주방은 개방형이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사장의 칼솜씨를 볼 수 있었는데 웬만한 단골이 아니면 관람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볼 거리였다. “광어요”, “도미요”라고 소리치면 작업이 끝난 것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칼소리도 들리지 않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래서,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횟집은 정식이름에도 불구하고 ‘칼잡이네’로 불렸고 칼잡이네는 항상 손님으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포장하려는 손님으로 인해 말 그대로 문정성시를 이루었다.

 

 

 

어느 가을 저녁의 일이었다. 퇴근길에 소주가 생각나서 가게에 들렀는데 좌석을 대기하는 사람까지 있어서 포장 주문했다. 포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사장님의 솜씨라면 순식간에 회가 나올 걸 알고 있었다.
계산을 하고 가게 앞에서 비어가는 수족관을 보면서 ‘오늘도 엄청 죽어나갔구나’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대학생인 횟집 딸이 쫓기듯 뛰어서 가게로 들어가며 “엄마!”하고 소리쳤고 엄마를 보자마자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놀란 사장님도 칼을 든 채 주방에서 홀로 나왔다.
이내 누가 봐도 건달로 보이는 세 사람이 거칠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 시발년이!”하며 셋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건달이 딸의 머리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모든 건 순식간이었다.
횟집 사장님이 한손으로 건달을 손을 낚아채더니 칼을 든 다른 손을 현란하게 흔들었다. 소리도 없이 건달의 윗옷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면서 야쿠자식 문신이 들어났다.
“어, 어, 어.”
건달은 당황한 나머지 말을 못하고 이상한 감탄사만 내뱉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두 졸개도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식탁에 앉은 손님들, 나를 포함해 가게 앞에서 안쪽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입만 쩍 벌리고 이었다. 누구도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놀라는 바람에 수족관 물고기들의 말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침묵 깨뜨린 것은 칼잡이네 사장님이었다.
“나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한숨 같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졸개 둘이 한 팔씩 우두머리를 붙잡고 잡아당기면서 허겁지겁 가게를 빠져나갔다.
순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세상 좋은 구경을 한 것이었고, ‘칼솜씨’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이후 칼잡이네는 건달퇴치의 전설과 함께 명성이 하늘 찔러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명소가 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아무리 과음을 해도 가게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일행이든 옆자리 손님이든 어떻게든 자제를 시켰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게 밖에서도 회를 써는 사장님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서 일없이 지나다가도 잠시 구경을 하게 되고, 포장 주문을 하게 된다. 오늘 밤도 가게 문을 열 때는 가득 찼었을 수족관은 몇 안 되는 물고기들이 운명도 모르고 입을 껌뻑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