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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

[손바닥 소설] 호접몽 胡蝶夢

“<매트릭스> 알지? 현재, 여기가 가상이라는 거야.”
그는 담배 연기를 뱉었다.
“이 연기처럼 허무한 거지.”
“모든 게 가상이라면 너무 웃기지 않아?”
“가상인지 모르면 웃길 것도 없지.”
“가상현실이라면 내 정면에 액자와 벽이 있어. 그런데, 시선이 닫지 않는 곳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인 거지. 내 등 뒤는 아무것도 없는 거야.”
“아니, 지금 자네 등 뒤에는 책장이 있어.”
“그건, 네가 가상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가능한 거야.”
“내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인간으로 사는 거 힘들어.”
“진짜 네가 가상일 지도 몰라. 정교한 엔진이라 가상 인간이 스스로를 가상으로 자각 못하도록, 심지어 진짜 인간도 가상 인간을 구분 못할 수도 있는 거야.”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맥주잔을 들어 마셨다.
“이 맛도 가짜겠구만.”
“사실, 맛과 냄새도 뇌의 작동이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 조작이 가능하다는 거야.”
“그래도, 맥주는 진짜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럼, 어떻게 가짜인 걸 확인할 수 있을까?”
“그걸 뭐 하러 해?”
“음, 그건 생각을 못해봤는데. 그래도 가짜를 확인하는 게 진짜니까.”
“때론 모르는 게 좋을 때도 있어.”
“그래도 궁금하단 말이지.”

 

“프로그램 작동 방식을 따라 가다보면 허점이 나오겠지.”
“그래, 과부하를 걸어도 되겠군. 그럼 네가 갑자기 버벅거리면서 맥주를 흘리게 될 거야.”
“크크크, 그래, 그렇지.”
“그리고..., 프로그램에 입력되어 있지 않는 행동을 하는 거야. 아마 플레이어의 감각에 맞춰져있을 거야. 오감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버그가 날 거야.”
“그래서, 어떻게 오감을 벗어나야 하는데?”
“예를 들어 뒤로 걷는 거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옆으로 비켜서 뒤로 걷기 시작했다.
“조심해라, 넘어진다.”
잠시 뒤로 걷다가 벽 앞 장식에 닿았다.
“가상은 아닌가 보구만. 하하하.”
“쓸 데 없는 짓 그만하고 맥주나 마셔.“
그들은 다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