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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내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 오는 삶의 아픔
살아 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 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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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씨가 절필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한 때,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노래하던 시인이었고, 육신의 자유보다 노래하는 자유를 선택했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날부턴가 시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가 타는 목마름으로 부르던 것들을 스스로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의 절필 선언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그는 시를 쓸 수 없는 늙은이, 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회찬 의원의 발인이 있었습니다.

누가 시인의 마음을 가진 것이었을까요?
티끌 하나 참지 못한 고고함일까요, 인생을 쉽게 부정해버리는 노회일까요?

습하고 더운 날, 내 마음 어딘가에도 습기가 어립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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