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택시 운자사는 어두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희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녔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들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으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 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죽음은 가끔 택시를 타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때마다 살아보려고 입에다 음식을 밀어 넣고 있자만,

누구나 검은 잎을 입에 붙이고 살아갑니다.

택시를 타듯이,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 내가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나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눈빛은 두렵지만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는 존재일 겁니다.


 

'시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수(鄕愁), 정지용  (0) 2017.07.17
플라타나스, 김현승  (0) 2017.07.14
서시, 윤동주  (0) 2017.07.12
유리창, 정지용  (0) 2017.07.11
이런 시, 이상  (0) 2017.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