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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

[손바닥 소설] 복권

 

복권

 

 

다리에 힘이 빠져서 지하철을 탈 수가 없기도 했거니와 이젠 택시비를 아끼느라 몇 번씩 환승할 필요도 없어졌다.

로또 당첨!

50억이 넘는 당첨금, 실제 받는 돈도 40억에 가까웠다.
청과물 시장에서 야간 하역을 끝내고 다음 일을 위해 세 시간을 자기 위해 옷도 벗지 않고 누웠을 때 지갑에 반으로 접혀 들어있는 로또가 생각났다. 잠시 후면 가치가 달라질 종이 한 장을 꺼내고 전화기로 당첨 번호를 검색했다. 그리고 당첨. 환성 대신 눈물이 나왔다.
당첨금을 확인하고는 쓰러져 오열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터진 거액에 당첨된 것이다. 한참을 울다가 일어나 문자를 보냈다.
“사정이 생겨서 오늘부터 출근을 못하게 됐습니다.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6개의 번호를 동시에 지정해서 발송했다.
그는 6가지의 일을 했다. 평일에 3가지, 주말에 2가지, 평일과 주말에 걸쳐 1가지. 말 그대로 잠을 줄여가면서 일을 했고, 일과 일 사이에 쪽잠을 잤다.

한때는 괜찮은 회사원이었고 이후에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지금은 망해서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신용불량자이며 이혼남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서 이혼한 아내에게 생활비와 양육비 대고 딸아이의 학비를 보내주었다. 곧 대학생이 되는 딸의 학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도 잔인하게 짓누르던 피로가 사라졌다. 편의점으로 가서 가장 비싼 와인 두 병과 든든한 안주꺼리와 담배를 샀다. 지난 명절 이후 처음으로 마시는 술이었고, 와인은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담배를 끊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최대한 줄이기로 택했었다. 하루 4 개를 폈다. 아침, 점심, 저녁, 새벽. 유일한 레저를 위한 소비였다. 오늘은 담배를 계속 물고 있을 참이었다.

하지만, 와인은 고된 육체에 더욱 빠르게 퍼지는 법, 와인을 반병도 마시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고 깨었을 때는 낮 11시였다. 깨끗하게 몸을 씻고, 가장 멀쩡한 옷을 골라 입었다.
‘옷도 좀 사야겠네.’
안주머니에 복권이 든 지갑을 넣었다. 두어 걸음마다 가슴에 손이 갔다. 지갑의 두툼함에 다시 안도를 하면서 택시를 잡았다.

아내와의 첫 데이트 이후 이런 설렘은 없었다. 불안과 기쁨이 교차하고 섞여서 심장이 빠르게, 그리고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택시는 뚫린 길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느리게 움직였다.

먼저 빚을 갚고 아이에게도 커다란 방을 줄 수 있는 집을 아내의 집을 사고 현금으로 한 10억 쯤 ‘척’ 차고 던져주면, 어쩌면 다시 같이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이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교를 다닐 수 있다. 그리고 아빠가 번듯하니 결혼도 번듯한 남자와 할 수 있을 것이다.
재기를 위해 동생 이름으로 만든 3천만 원짜리 적금은 그냥 동생에게 선물하면 될 것이다.
대단한 부자는 아니래도 20분 후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부자가 된다. 환호라도 지르고 싶지만 오른손을 심장 위, 심장 위의 지갑을 누르면서 마음을 달랜다.

“당첨금 받으러 왔습니다.”
몇 가지 절차를 마치자 통장에 처음 보는 자릿수의 숫자가 박혔다.
숫자를 보자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마음이 너무나 평온해졌다. 심장 박동도 점차 낮아졌다. 천천히 은행을 나와 택시를 탔다. 창문도 없는 고시원으로 향하려다 시내 특급호텔로 목적지를 바꿨다.
‘오늘은 사치도 괜찮아.’
너무 긴장했었고 그 긴장이 순간에 풀려버린 탓에 졸음이 몰려왔고 이내 잠이 들었다.
그의 심장 박동은 점점 느려졌고 잠시 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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