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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분류할 수 없는 글들

나의 아저씨, 연애가 어때서?

이선균씨와 이지은(아이유)씨가 출연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미생>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유일한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보고 나서 떠오른 단어는 '공감', '사랑', '연민', '인생', '아....'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자되는 단어는 '폭행', '원조교제', '롤리타' 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빚쟁이에게 폭행을 당하는 21세 여자.

가족과 보는 드라마에서 이런 폭행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폭력과 구질구질한 인생이 존재합니다.

정원에 가득한 꽃을 보고 예뻐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권리라면,

흙속에 썩어서 거름이 된 주검들과 정원을 가꾸는 가혹한 노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입니다.

현실은 더 잔혹할 수 있고, 그 잔혹함을 외면하고 싶다면 드라마가 아니라 디즈니 애니메이션만 봐야할 겁니다.



또 다른 비판의 주제는 남녀주인공의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주인공인 박동훈이 이지안보다 24살이나 많으니,

'원조교제다', '한남충의 판타지다', 등의 비판이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겁니다.

"그게 어때서?"




박동훈은 마흔다섯의 아저씨입니다.

인생이 지옥이니 벌 받고 가면 된다며, 힘든 인생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나를 포함해 박동훈보다 더 어려운 현실에 있는 아저씨들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공감하게 됩니다.

숨을 쉬고 있는 건 '나'이지만, 내 인생에 '나'는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그를 이해합니다.



두 남녀는 직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일련의 사건에 엮이면서 서로의 비참한 처지를 알게 되고 그 상황을 이해하고 연민합니다.



인생에 좋은 일 하나 없이 살다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게 됩니다.



총 16회 중에 7회가 되어서야 이지안이 웃습니다.

어깨만 보이는 박동훈도 웃고 있습니다.

슬픔과 함께, 사소한 즐거움을 공감합니다.



삶을 옹죄던 고난들이 끝나고

(물론, 인생은 계속되고 슬픔과 고통은 또 찾아올 겁니다.)

해결의 시점에서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헤어지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포옹을 합니다.



이지안은 애정과 아쉬움과 다른 많은 감정을 담아 박동훈을 응원합니다.



박동훈도 이지안의 청춘과 밝은 미래를 기원하며 '파이팅'이라고 응원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인생은 여전히 힘들기도, 때로는 즐겁기도 합니다.



이지안이 떠난 후, 아내와 이혼한 박동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혼자서 밥을 먹다 말고 오열합니다.



하지만....

삶은 지속됩니다.

그 일상 속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납니다.



이전과는 다른, 깨끗한 옷차림과 여유있는 미소로 두 사람은

우연히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드라마는 끝납니다. 그리고, 인생은 계속됩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늘 열여섯 같은 가수 아이유의 이미지를 이지안에게 투사해서일까요?

이지안과 박동훈의 사랑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만나 사건을 겪고 마음과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그래서 연민이 사랑으로 변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욕을 할 수 있는 건덕지가 있는 건지...

이런,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게 아닐까요?


두 사람의 사랑에 이유가 없었다면 나도 욕할 겁니다.

아니, 드라마를 보다가 말았을 겁니다.


그럴싸 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아저씨>의 사랑은 아주 그럴싸 했고 나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