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별히 분류할 수 없는 글들

미움 받을 용기는 너나 가지세요.



제목이 그럴 듯하여 베스트셀러라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샀다.

'청년'과 '철학자' 간의 대화로 구성되어 술술 읽혀야할 책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지 않는다.

절반 가까이 읽었는데 시간이 갈 수록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어진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씨는 '이 책은 좋은 책이다'라고 추천을 했지만,

외계인의 하수인이며 지구인이며 한국인인 나의 평은 '이 책은 나쁜 책이다'이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좋은 서평들이 가득할 테니 여기서는 생략하고,

내가 나쁜 책으로 평가하는 이유만 밝히고자 한다.




이 책에 '틀린 내용'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틀리지 않다고 '옳은 것'도 아니다.

나는 옳지 않은 점을, 그래서 나쁜 점을 너무 많이 찾아낼 수 밖에 없었다.


책은 인간은 과거나 환경에 무관한 존재이며 그래서 현재와 환경을 대하는 태도만 바꾸면 개선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맞는 얘기다. 의지를 복돋아 주는 듯도 하고, 현실세계에서 경험을 통해 이러한 인간형을 많이 보게 된다. 노숙자였다가 의지를 불태워 재기하고 굴지의 기업을 세운 사람도 있고, 학대받던 과거를 극복해서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더라는 얘기는 흔하디 흔하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보고나 듣고서 많은 힘을 내게 된다. '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너는 못해, 빙신아!'이다.


아이가 있다. 엄마, 아빠 모두 일을 하지만, 벌이는 의사인 아빠가 혼자 버는 집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아이는 공립학교에서 방과후 돌보미 교실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병원집 아이는 통학버스를 타고 사립학교를 다니며 바이올린도 배우고 영어도 배운다. 아이는 1주일에 두 번 방문교사가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고 중학생이 되면 친구들과 동네 보습학원을 다니겠구나 생각한다. 병원집 아이는 여름방학마다 1개월 어학연수를 가고 겨울에는 엄마, 아빠와 해외 여행을 다녀온다. 국제중학교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아이는 일반고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잘 하는 편이지만 지방대에 겨우 갈까말까한 수준이다. 병원집 아이는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저녁마다 개인과외를 받고 있고 의대에서 가서 아빠처럼 의사가 될 지, 아니면 유학을 갈 지 고민한다.

대학에서도 4%가 넘는 이자를 내며 학자금대출을 받아야 하고 어렵사리 취직을 해도 언제 짤릴 지 모르는 임시직이다. 월급 받아서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아직도 일하고 있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다가구 주택에서의 독립은 꿈도 꿀 수 없다. 병원집아이는 1년에 2,3천만원 학비를 내며 의사가 될 준비를 하고 학교에 남을 지 개업을 할 지 고민한다. 본인한테는 아주 심각한 (배부른) 고민이다.

회자되는 사회현상 중에 '금수저, 흙수저'라는 것이 있다.

태어난 환경, 부모의 배경이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특히 빈부격차(양극화)가 심해질 수록 '유산'에 의한 사회적 계급결정이 보편화된다.

'갑부의 사주'를 타고난 가난한 가정의 아이가 기를 쓰고 노력해봤자 '거지의 사주'를 받고 태어난 삼성가의 이재용씨가 사는 집의 화장실만큼의 재산도 모으기 어렵다.


<미움받을 용기>에는 사회적 위치, 계급에 대한 얘기가 없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이룬 환경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현재의 '너'가 고통 받는 것은 '너'가 그러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복이 자신의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해결된다고 주장하려면 이건희씨를 아버지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함께 주어야 공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책을 산 모든 사람이 의학박사가 될 지, 개업의가 될 지 고민하는 것은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미움받을 용기>는 현실에 안주하고 미래를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에 잘 팔린 듯 하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 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나만 바뀌면 되는데 나를 바꾸지 못해 이런 것이고, 여태 못 바꿨으니 앞으로도 못 바꾸겠지라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은 <넌 안돼, 빙신아>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가끔 이런 책들이 뜬다. <그냥 그렇게 살아, 빙신아>라고 해석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한 때 잘 나갔었다.


완독하고 혹시라도 바꿀 내용이 있으면 관련 글을 다시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