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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

참회록, 윤동주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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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 시인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 더 많은 참회를 해야할 것이나,

참회를 한다는 것마저도 부끄러운 지 아무런 참회도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머리를 풀고 옷을 찢어 참회할 날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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