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베드로
“기도 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는 성자의 죽음과 부활하심을 믿어 고백하오니, 그리스도 안에 고이 잠든 ....”
새벽 장례미사에는 매일 새벽마다 미사를 보러오는 노인 신자들만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새벽미사가 아닌 장례미사에 참가한 사람은 상조회사 직원뿐이었다. 사망 후 3일, 예수는 부활해서 하늘로 올랐으나 제대 앞 나무관 속에 누운 남자는 부활하지 못하고 미사가 끝나는 대로 화장장으로 옮겨지고 곧 재가 되 어딘가에서 흩뿌져질 터였다.
김철수 베드로
가족도 찾아올 이도 없는 그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을까? 그의 인생에 대해 어떠한 정보가 없어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에게는 낳아준 부모가 있었을 것이고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중년을 살아 왔을 것이다. 그는 한 사람으로서 그 몫을 다해 살아냈던 것이다. 그리고 사흘 전, 한 순간 그 인생을 끝맺었다.
미사는 차분히 진행되었다. 그저 여느 평일 새벽과 같았다. 갖 부임한 젊은 보좌신부는 복음을 읽고 강론을 위해 준비한 종이를 펼쳤다.
“여기 잠든 김철수 베드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조용했던 성전은 순식간에 더욱 조용해져서, 지독한 고요에 모든 신자들이 동요를 느꼈다.
자살한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 천국에 갈 수 없는 자는 장례미사를 치를 수 없다.
신자들은 예외적인 상황에 당황하면서 신부의 강론을 기다렸다.
“그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습니다.”
‘철수’라는 흔한 이름은 무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바람이 담긴 것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할 때까지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철수의 부모는 그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확인한 후 세상을 떠났다.
제빵사는 이른 아침에 빵을 사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새벽부터 빵을 구워야 하는 고된 직업이었고, 그는 성실했다. 그리고, 그는 성실히 아내를 사랑했고 그 보다 더한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감사했고 행복했다.
“김철수 베드로 형제에게는 딸이 있었습니다. 아내인 이미경 마리아는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를 보낸 슬픔은 어쩔 수가 없었지만, 형제님은 딸에게 사랑을 쏟으며 다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탓에 새벽에 잠든 아이를 업어서 출근해서 가게문을 닫을 때까지 업고 누이기를 반복해야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시기가 될 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도 집보다 빵가게를 더 익숙해했다. 똑똑한 아이는 빵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장이며 걸어가서 맑은 목소리로 가격을 알려주곤 했다.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빠와 함께 빵가게에서 생활했다. 한켠에 빵가게와 어울리는 않는 학생용 책상이 놓여있었다.
아이는 아빠의 자랑이었다. 손님들에게도 성당 사람들에게도 기회만 생기면 딸 자랑을 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민망해하는 딸을 위해 자랑을 줄이기는 했지만,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는 이전보다 많은 자랑을 늘어놓았다.
아빠의 자랑에 시샘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한 뼘은 큰 키에 부모를 닮아 늘씬한 체형을 타고 났고, 학원 대신 빵가게에서 공부를 했지만 한두 번의 시험을 제외하고는 모두 만점을 받는 우수생이었고, 아버지의 일을 웃으면서 돕는 아이였다. 어느 정도를 넘어서는 탁월함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는 것에는 시샘하지 못하는 법이다.
“넌, 나 안 닮았어.”
성적표를 받는 날이면 철수는 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매번 같은 말을 하곤 했다.
꼭두새벽에 아빠가 빵을 만드는 동안 아이는 옆에서 공부를 했다. 저녁이면 구석에서 잠시 눈을 붙인 아빠를 대신해서 빵을 팔았다.
김철수는 행복한 아빠였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봄날 새벽, 아빠와 교복을 입은 딸은 가게 앞 신호등을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굉음이 미친 듯이 다가 왔고 바로 등 뒤에서 ‘쾅’하는 소리에 철수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자리에는 있어야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새벽어둠보다 검은 차가 비스듬히 서있었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철수는 차를 향해 달려갔다. 차에 다가갈수록 차에 가려졌던 아이의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찻길 한 가운데 누워있는 아이는 잠결에 약간 뒤척인 듯한 모습이었지만 편안해 보였다. 피도 흐르지 않았다.
“지안아, 일어나서 가자”라고 하면 “응, 아빠”라며 손을 내밀 것 같았다. 아빠는 아이의 몸을 감싸 안고 계속 일어나길 재촉했지만 아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딸은 검게 펼쳐진 아스팔트에서 유일하게 하얀 존재였다. 활기와 생기가 빠져나간 하얀 존재였다.
하얀 옷을 입은 신부는 감정 없는 표정으로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다시 입을 열었다.
“김철수 베드로의 딸, 김지안 미카엘라는 그렇게 허무하게 하느님께로 돌아 갔습니다. 그 아이를 죽게 한 차를 운전한 사람은 스무 살의 저, 이재훈이었습니다.”
스무 살의 이재훈, 오늘, 이재훈 요셉 신부가 되어있는 그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다. 아버지는 2대째 의사였고 어머니는 아들을 3대째 의사로 만들겠다는 사명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재훈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과목별 개인 교사가 매일 집으로 찾아왔다. 그런 교육이 15년 동안 이어졌고, 교육은 성공적이어서 재훈은 서울대 의대생이 되었다.
“차요, 차 사주세요.”
재훈은 의대 합격의 보상으로 차를 원했다. 재훈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부터 그날의 공부가 끝난 새벽 가끔 어머니의 자동차를 몰고 거리를 질주하고 다녔다. 운전면허는 없었지만, 새벽의 거리는 그가 운전하기에 충분히 한산했다. 엑셀레이터를 밟는 대로 속도를 올려주는 차가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괜한 스트레스로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른 척했다.
그날, 재훈은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 맞는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 도로를 질주했다. 조수석에 벗어둔 외투에서 담배를 꺼내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려 손을 내밀 때 큰 소리와 함께 짧고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아, 씨발....”
눈을 감은 채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곧 멈췄지만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겨우 눈을 뜨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빨리, 빨리, 빨리 좀 받아.”
“여보세요.” 왈칵 눈물이 났다. “엄마, 나 사람을 치었어요.”
119 구급차와 경찰차와 견인차가 왔고, 이재훈의 부모가 탄 고급 승용차가 도착했다. 사고 현장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수습되었다.
철수는 딸의 주검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멈추지 않는 눈물에 흐려진 시야에서도 딸의 고운 얼굴은 뚜렷하게 보였다. 재훈은 경찰차에 태워져 경찰서로 옮겨졌고 그의 부모의 차가 뒤를 따랐다. 재훈의 아버지는 친구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대화했고 통화가 끝날 때 쯤 경찰서에 도착했다.
“기철이 아저씨가 곧 올 거야. 그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
책상 앞에는 재훈이 앉았고 그 뒤로 그의 부모가 서있었다. 책상 건너의 경찰이 말을 꺼내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지금 변호사가 오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오면 시작하시죠.”
“너무 분명한 사고라서, 사실대로만 대답하시면 됩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날카롭게 말했다.
“안돼요! 변호사가 금방 올 거예요.”
곧 변호사가 왔고 재훈의 가족과 변호사 네 사람은 자리를 옮겨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술은 안 마셨지?” “네.” “건널목은 초록불이었던 거다.” “네? 네.” “50km다.” “....” “속도, 속도는 50km, 지키고 있었고.” “네.”
아버지가 물었다.
“어떻게 돼?”
“과속, 신호위반만 아니면 집행유예가 나올 거야. 피해자 측과 합의하면 재판도 빨리 끝날 거고. 구속도 절대 안 될 거니까 걱정 마.”
재훈 부모의 긴장된 표정이 동시에 풀렸다.
변호사가 재훈에게 말했다.
“재훈아. 걱정 하지 마. 너한테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몇 번만 법원 들락거리면 끝나. 넌 하던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신호, 속도만 정확하게 얘기하면 끝나. 나머지는 충격을 받아서 기억을 못하겠다고 해.”
재훈은 변호사를 힘없이 바라보았지만 옅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명석은 짜증이 났다. 교통사고 조서 작성에 변호사가 동석했기 때문이다. 교통계로 부서를 옮긴 후 변호사를 끼고 조서를 작성하기는 처음이었다.
“직업은요?”
“학생입니다.”
“대학생이죠? 학교와 학과는요?”
“서울대 의예과 1학년입니다.”
명석은 키보드에서 눈을 들어 재훈을 바라보았다.
“아, 서울 의대...”
재훈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아이 아빠도 할아버지도 의사예요.”
“아, 네네.”
이후 조서 작성은 신속하고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음주를 하지도, 과속도 신호위반도 없었다. 명석이 보기에 새벽 어둠에 급하게 건널목을 건너던 한 여고생에게는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가해자가 된 앞날이 창창한 대학생에게도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사건이 너무 흔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서로 운이 없었던 거니까.”
“네, 감사합니다.”
세 가족이 동시에 인사를 했다.
재훈의 가족과 변호사는 입구 가까이 놓인 소파에 앉아서 아버지가 사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합의를 잘 해야 하니까, 그냥 잘못했다고 얘기해야 한다.”
“막무가내로 나오면 어쩌지? 합의 못한다고 버티거나 말도 안 되는 합의금을 달라든지 말이야.”
“일단,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서 합의를 못한다고 버티게 만들면 안 된다는 거지. 금액은 절대 얘기하지마. 합의금은 내가 조정할 테니까.”
“기철씨가 잘 처리해 주세요.”
“제수씨,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설사 합의를 안 해줘도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거예요.”
그들은 경찰서로 오고 있는 철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와 저의 가족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웃이나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 그들의 처지나 고통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나로 인해 고통을 받은 사람과 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나를 해꼬지를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만 했습니다. 그런 제가 성공과 출세를 위해 의사가 되려고 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유리문 밖으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초점을 잃은 눈과 생기 없는 표정, 곧 휘청이며 쓰러질 듯한 힘없이 느릿한 걸음걸이로 봐서 김철수 베드로 형제님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온다, 온다.”
어머니의 말에 모두들 유리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못했다고만 하고, 가만히만 있어야 된다.”
“네.”
철수가 힘겹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변호사와 재훈의 부모가 반사적으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재훈의 팔을 당겨 일으켰다. 부산한 행동에 철수가 몸을 돌려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누군가요?”
목을 겨우 빠져나온 듯한 목소리가 철수의 입에게서 새어나왔다.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어른들과는 달리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앳된 청년을 발견한 철수는 재훈에게 다가갔다.
철수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재훈의 양팔을 잡았다. 순간 재훈 부모의 눈빛에 경계의 빛이 돌았다.
“너구나.”
“죄송합니다.”
“너였구나.”
재훈은 고개를 들어 철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철수의 눈아래 주름을 지나 흘러내리고 있었다. 재훈은 철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공포를 느꼈다. 무엇을 읽어내야 할지, 이 아저씨,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눈빛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 대하고 있는 짧은 시간이 한 없이 길고 괴롭게 느껴졌다. 어떤 위해를 가해도 저항하지 못할 것 같은 무기력하고 두려운 순간이었다.
철수는 재훈을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공포를 안겨 주던 눈빛이 사라지며 큰 안도감이 찾아오려는 순간 자신의 팔을 쥐고 있던 손이 풀리고 곧 그 두 손이 자신의 등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철수는 부드럽지만 강하게 재훈을 안았다.
그 순간, 재훈에게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둑이 터진 저수지의 물처럼 몰려들었다.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해오는 감정들 속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여태껏 느껴보지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떤 감정 하나가 날카롭게 심장을 찔렀다. 그리고 그는 낮에 길을 잃었다가 저녁에 집을 다시 찾은 아이처럼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려버린 등에서 아기를 재우듯 토닥이는 철수의 손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 1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반대를 부릅쓰고 신학생이 되었고 서품을 받아 며칠 전 본당의 보좌신부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 김철수 베드로 형제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중년의 남자는 매일 새벽 빵을 구우며 고통스러운 삶을 버텨냈습니다. 제가 사제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사제가 되는 과정 동안 형제님이 이 세상에 없었다면 그 길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힘들고 지쳐 고개를 숙일 때마다, 저는 아직도 그날의 손길이 제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 처음으로 저를 용서했던 김철수 베드로 형제님은 목숨을 내려놓고 싶은 삶 속에서도, 매일 새벽 사랑하는 딸이 목숨을 잃었던 그 길을 지나다녔습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용서의 세월을 살아내었습니다. 저는 형제님으로부터 10년에 걸쳐 용서를 받았습니다."
재훈은 잠시 고개를 돌려 심호흡을 했다.
"형제님이 저에게 배푼 용서와 사랑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형제님은 천국에 이르지 못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철수 베드로 형제님이 어느 누구보다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넘치도록 가진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형제님이 이 미사를 통해 천국에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용서를 배푼 이가 용를 받을 수 있도록.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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