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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들

크리스마스, 고요한 낮과 밤



내 아버지는 큰 회사의 전기공이셨다.

연말이면 품에 회사에서 아이들이 있는 직원들에게 나눠 준, 종합선물세트를 안고 오셔서 형과 나를 기쁘게 해주셨다.


나는 산타크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 밤이면, 양말을 머리맡에 놓으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백원짜리 하나 넣어주이소."





겨울이면 집 뒤 언덕에 있는 교회는 반짝이는 전구들로 둘러쳐졌고 거리마다 캐롤이 울려퍼졌다.

몇 개 안되는 TV채널들은 크리스마스 특선 만화를 해줬다.

밤이면 교회의 아이들이 나와 문앞에서 불러주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따뜻한 방에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행복한 집의 행복한 아이였다.

겨울, 날씨는 추웠지만 항상 따뜻한 시절이었다.


이제 성냥을 팔다 얼어 죽는 불쌍한 소녀는 더 이상 없다.

오히려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소녀들이 많아지고 있다.


요즘 겨울은 그저 겨울이다. 차가운 바람과 중국에서 건너 온 미세먼지를 걱정해야하는 계절이 되었다.

아직 오랫동안 살아가야함에도, 어쩌면 행복한 시절은 끝났는지도 모른다.




※ 이왕에 애니메이션 <프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을 올린 김에 <와탕카>의 <프란다스의 개> 편도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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