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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분류할 수 없는 글들

마흔 여덟, 슬픔에 눈이 밝아지는 나이

조만간 반백이 된다.

경제적, 사회적, 시간적 여유가 더 없어져 버렸다.

객관적으로는 실패해 가고 있는 인생, 어쩌면 이미 실패한 인생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슨 연유인지 오지랍은 넓어져서 이것, 저것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는데, 그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모조리 슬픈 것들뿐이다.

붓다의 통찰처럼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고통이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만 인생에서 늘어난 것이 슬픔 뿐이다.

 

친구를 떠나 보내는 유기견

부쩍 개가 자주 보인다.

개에게는 같이 사는 사람들이 그 개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이다. 아이에게 엄마가 전부인 것과 같다.

그런데 그 개를 버리는 인간들이 있다. 세상을 뺏어 버리는 것이다.

개를 버린 인간을 찾아가서 창이 없는 방에 가둬버리고 싶다. 세상을 뺏어버리고 싶어진다.

 

달도 보인다. 저녁의 초승달과 새벽의 그믐달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바람없는 호수처럼 잔잔해진 마음에 슬픔이 채워진다.

차고 이지러지는 달인데 웬지 마음은 이지러지기만 하는 듯 하다.

 

 

 

세상에는 슬픔이 넘친다.

개, 달, 하늘, 자동차, 낮, 봄, 수도꼭지, ....

걔 중 가장 슬픈 것은 거울이다.

나는 나를 보는 것이 가장 슬프다.

 

윤동주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맑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1939년 9월, 윤동주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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