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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

[손바닥 소설] 사랑의 장면

 

사랑의 장면

 

 

장면 1

여름 밤, 시원한 어둠이 내려앉은 주차장 쪽 출입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있는 정문과는 달리 호텔 뒤 주차장은 음산한 느낌이 들 만큼 고요했다. 출입문 계단에 앉아 어둠과 어둠 사이사이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담배 하나 줄래요?”
뒤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 돌아보니 하늘하늘한 원피스의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스물넷의 남자라면 설렐 수밖에 없는 미모와 옷차림이었지만 그에게는 너무 흔한 모습이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주었다.
여자는 남자 옆에 앉으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와 라이터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놓여 경계, 혹은 공유물을 나타내는 듯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연기를 내뿜었다. 검은 담배 연기였지만 더 검은 어둠을 헤치고 공기 중에 퍼져 사라졌다.
“돈 벌기 쉽대서 시작했는데, 난 참 힘 드네요.”
“뭐든 힘들어요.”
두 사람은 다시 말 없이 앉아있었다.


장면 2

학교를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자세를 잡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내년 겨울에 있을 졸업을 위해 봄에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졸업앨범에 봄을 담기 위해서일 것이다.
화장이 어색한 여학생들도 있었고 봄보다 화사한 화장과 옷을 입은 학생도 있었다. 누구든 입술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남자는 커다란 돌들로 지은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까르르 웃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여자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지만, 여자는 잠시, 기억날 듯한 이름을 떠올리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친구들과의 수다에 합류했다.
‘다행이다.’
남자는 여자가 알아보지 못한 것에 모호한 안도를 느꼈다.

 

 

 

장면 3

“오빠! 나 합격했어!”
여자는 남자를 보자마자 품에 뛰어들면서 울먹였다.
“거봐, 내가 안 될 수가 없을 거랬잖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도서관에 가방 있는데 ...”
“밥 먹고 다시 오자.”
여자는 남자의 팔을 당겼다.
“그래, 그래.”

여자의 기쁨은 잘 가라앉지 않았고 생선회에 잘 어울리는 소주는 흥분과 함께 여러 감정을 불러왔다.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어.”
“난 알았어.”
“아니야,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잘 되는 일이 없었어. 아빠 일도 그렇고.”
남자는 식탁 위로 여자의 손을 잡았다.
“이제, 괜찮을 거야. 지금부터는 다 잘 될 거야.”
행복한 표정의 두 사람은 건배를 했다.

여자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남자는 담배를 피우러 가게 앞으로 나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밤이 되어 어두워져서야 더 활기차 보이는 거리는 쌀쌀해 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잘 됐다.’
그때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 하나 줄래요?”
남자가 고개를 여자와 시선을 맞췄다.
“고마워, 오빠.”
여자는 천천히 다가와 남자의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