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1) 고아
혹독한 겨울 새벽에 태어난 아기는 불이 꺼진 사창가의 구석방에서 젖을 찾아 해가 뜰 때까지 혼자서 울어댔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지쳐 잠이 들었을 때, 체액으로 얼룩진 이불에 싸여 사창가에서 고아원으로 옮겨졌다.
정부의 지원금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찬 고아원 원장은 언제나 새로 들어오는 아이를 환대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갓난 아기에게는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고 3, 4년이 지나면 수익이 꽤 생기게 되어있었다. 원장은 아기는 쳐다보지도 않고 서류작업을 시작했다. 서류에는 고아원에 15일 전에 들어온 것으로 되어있었고 보름 전의 날짜가 1월 1일이었기 때문에 아기의 이름은 ‘김신정’으로 정해졌다. 그렇게 아기는 버려졌다.
고아원의 형들과 누나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가장 어린 누나가 곧 학교에 가기로 되어 있는 나이었다. 당연히 친구가 없었다. 더욱이 그들은 신정을 미워했다. 무기력한 신정은 귀찮은 존재였다. 늘 혼자 버려져있었다. 몇 해가 지나 같은 나이의 고아들이 들어와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신정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표정 때문에 아이들은 신정을 불편해했고 심지어 두려워 하기도 했다. 신정은 외로운 아이였다.
고아원의 원장과 아이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직원들도 신정을 싫어했다. 그들이 말할 때면 늘 신정의 눈치를 봤다. 아이들을 때리는 일이 일상화된 곳이었지만 신정은 유독 많이 맞아야 했다. 매나 주먹으로 얻어 맞아도 신정은 울지 않았다. 직원들은 울지 않는 신정이 께름칙했고 그래서 더 많이 때렸다.
고아원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밖에 없었다. 죽거나 어른이 되거나 입양이 되는 것이었다. 신정은 입양을 택했다. 한국인들은 입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로 입양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또래에 비해서도 키도 몸집도 작은 신정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신정은 영어를 혼자서 공부했다. 8살이 되기 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복지재단을 통해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부부가 찾아왔다. 신정은 또래 아이들 보다 키가 작아 눈에 띄지 않았지만, 웃으면서 영어로 인사를 한 유일한 아이였다.
입양이 예정되자 더 이상 매를 맞지 않았다. 입양, 특히 해외입양이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신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신정이 한 손에는 백인 아빠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흑인 엄마의 손을 잡고 고아원을 떠날 때,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지만 그들이 진정 반가워한 사실은 신정과 함께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의 이름은 스티브 킴 울프가 되었다.
백인 아빠, 흑인 엄마, 그리고 외소한 동양인 아이. 스티브는 생활에 만족했다. 아버지는 성실했고 어머니는 다정했다. 그리고, 스티브는 똑똑했다. 운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특출했다.
아버지는 스티브를 위해 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을 뉴욕까지 가서 빌리거나 사왔고, 어머니는 책을 보느라 늦게 잠이 드는 스티브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리고 스티브는 행복했다. 특히, 새벽에 잠이 깬 어머니가 스티브 방의 문을 열고 아직도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을 야단 치고는 방의 불을 끄는 순간이 좋았다. 침대에 누워 혹사 당한 눈을 덮어주는 어둠 속에서 스티브는 무한한 행복 속에 잠이 들었다.
스티브는 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았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 아이는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좋은 공격 목표가 되었다. 특히, 부모의 피부색이 다를 때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피부색이 같은 중국인 아이들도 스티브를 괴롭혔다.
교사들도 스티브를 난감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가르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스티브는 자신이 들고 온 책을 봤고 교사는 스티브의 눈치를 봐야했다.
학교를 그만 둔 스티브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또래의 아이들은 학교에도 있었지만 집 주변에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스티브의 관심은 책상위에 펼쳐진 책과 노트에만 있었다.
열 일곱 살 스티브의 논문은 저명한 과학 잡지에 실렸다. 핵물질의 분열을 지연시키는 환경구성에 관한 논문은 핵에너지의 안전한 이용에 대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고, 핵융합 에너지 개발의 단초를 가져다 주었다.
2년 후에 발표한 논문은, 이후 ‘중성자 스위치 이론’이라 불리게 되는 핵분열 통제에 관한 이론이었다. 중성자와 원자핵의 결합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소형 폭탄 하나로 국가 하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발전소 하나로 전세계에 전기공급이 가능할 만큼의 에너지를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소량의 물질로도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방사능 물질 배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전세계는 뉴욕 근교의 소도시에 사는 동양계 아이 때문에 열광했다.
전쟁광들에게 엄청난 핵무기를 손에 쥐어줄 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고, 전세계의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했다. 환경론자들은 공해와 오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기술 개발 가능성에 환영했다.
스티브의 이름은 순식간에 전세계에 알려졌다.
두 편의 논문은 스티브와 그 주변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한적한 중산층 마을에 전세계 취재진들이 몰려왔다. 스티브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고 기자들은 이웃주민들과 인터뷰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웃들은 스티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언론은 스티브의 과거와 가족에게 집중되었다.
스티브는 동양에서 입양된 천재 소년으로 알려졌다.
대학들은 스티브에게 입학해주길 바랬고, 일부 대학은 연구실과 연구비를 제시했고 유명 교수들은 직접 편지를 보내왔다.
장관들이 방문한다고 했고 백악관에서는 초정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스티브는 이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다. 단지, 마을이 다시 조용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어머니는 감수성이 예민한 스티브가 사람들에 의해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웠다. 악의가 없는 사람도 이익에는 민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집에서 책만 읽는 스티브가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평소와 다름 없이 생활하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했다.
반면, 스티브의 아버지는 들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세계를 바꿀 천재라고 한다면 들뜨지 않는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아들 자랑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죽게 되었다.
아버지는 친구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친구는 무릎 사이에 공을 끼고 TV를 봤다. 스티브와 나이가 같은 친구의 아들은 고등학교 축구팀의 주전이었고 아버지를 닮은 큰 덩치로 타이트엔드를 맡고 있었다. 이전의 스티브의 아버지는 친구의 아들 자랑에 잠자코만 있었다. 친구 아들은 마을의 스타였고 축구 선수로서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날도 친구는 아들을 자랑했다.
"벌써 학교에 스카우터가 다녀갔다는군. 졸업이 1년도 더 남았는데 말야."
"그래? 잘 됐군. 우리 아들은 진학에 영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 하버드도 MIT도 총장까지 전화해서 오라고 하는데 관심이 없어. 매번 거절하는 것도 참 곤란하단 말이지. 백악관 초청도 거절했더니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했지 뭔가? 스티브와 통화하고 싶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스티브의 연구를 방해할 수 밖에 없었지. 그래도 스티브는 대통령에게 직접 백악관은 안가겠다고 말하더구만. 녀석이 배포가 커."
"배포는 크지만 몸은 작잖아. 아직 사춘기도 안된 아이 같으니 말이야."
"책만 읽고 연구만 하느라고 몸이 크질 않아. 그래도 그렇게까지 연구를 하니 전세계를 바꿀 수 있게 된 거지. 몇 년 있으면 노벨평화상과 물리학상을 동시에 받는 최초의 인물이 될 거라더군. 이제 겨우 열일곱살인데…, 하여간 MVP트리피보다 노벨상이 거실에 있는 게 난 더 좋을 것 같아."
친구는 눈이 찢어진 노랗고 작은 스티브가 자신의 아들보다 유명세와 명예를 가진다는 것에 기분이 상했고 자신이 매번 하던 아들 자랑을 친구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 싫었다. 반면, 스티브의 아버지는 의기양양해졌다.
이후 둘은 말없이 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지만 둘의 기분은 상반된 것이었다. 꽤 많은 맥주를 마셨고 축구경기가 끝났다.
"축구 경기가 끝났구만"
스티브의 아버지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맥주 잘 마셨어. 나는 아들 보러 가야겠네."
그때 친구의 아들이 2층에서 내려왔다.
"오, 미래의 MVP가 오셨구만. 우리 아들은 기껏 노벨상에 불과한데 말이야."
친구가 던지 공이 스티브 아버지의 옆얼굴로 날아왔다. 거리는 가까웠고 분노와 시기로 많은 힘이 실려있었다.
"노란 원숭이 새끼!"
스티브의 아버지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