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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분류할 수 없는 글들

나의 이력서


누군가는 폼 나게 사랑을 잃고 쓴다는데,

나는 멋대가리 없게 직장을 잃고 쓴다.


쓰다 보니 나의 이력은 어찌 이토록 무미건조한 것인지.

언제라도 목숨을 내어 놓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내 이력의 마지막이 사랑하다 맞이한 죽음이 아니라 무능으로 맞이한 실업이라니,

어쩌면 하찮은 인간이 하찮은 노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죽어서야 이력서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기껏해야 다섯 줄도 안될 묘비명이 전부일 게다.



직장을 잃고 이력서만 쓰다가

목숨을 잃고 묘비명을 쓴다.

이제, 나는 이력서 쓸 일 없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수목장 묘지에 계신다.

마치 소리내어 불러달라는 듯 나무마다 명패가 걸려 있다.

우연히 내 이름과 같은 명패를 발견했었다.

'그래,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별 수 없다.


그러니,

착하게, 재밌게 살자.